2014. 9. 25. 23:13

내가 삶과 죽음을 인식하게된 계기.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입학하기 전에 예비소집이 있었다.(정확한 명칭이 기억나지 않아서 그냥 예비소집일이라고 표현했다.) 고등학교를 입학하기 전에 왜 예비소집을 했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의아하지만 입학식 몇 주전에 먼저 학교에 가서 시험도 보고, 단체로 달리기도 했다. 


수십명의 남자아이들을 두줄로 세워서 달리기를 시켰는데, 한바퀴를 채 다 돌기도 전에 내 앞에서 달리던 친구가 갑자기 쓰러졌다. 다리가 걸려서 앞으로 넘어진다거나 하는게 아니라 마치 온몸에 힘이 풀린 것처럼 이상한 모양으로 팔다리가 꺾이면서 땅으로 곤두박질 치듯이 쓰러졌다. 체육선생님이 뛰어오고, 응급차가 바로 달려왔다. 그리고 예비소집은 그날로 끝이 났다.


입학식을 마치고 며칠이 지나 등교를 하는데 교문 앞에 왠 아저씨 한분이 상복을 입고 앉아계셨다. 달리기 도중에 쓰러졌던 그 아이는 심장마비로 바로 숨을 거뒀었고, 상복을 입은 분은 바로 그 아이의 아버지셨다. 그 친구는 그전에 지병이 있거나 몸이 약했던 것도 아니었고, 갑자기 심장마비가 올 이유가 없는데 학교에서 무리하게 달리기를 시켰다는 것이 상복을 입고 학교에 오신 이유였던 것 같다. 


그런데 예비소집일에 그 아이는 달리기를 거의 시작하자 마자 쓰러졌었다. 무리를 해서 쓰러진 것이 아니었다. 


그때까지 "죽음" 이란 단어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혹은 먼미래에 겪게될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내 눈앞에서 아무이유도 없이 한 사람이 죽었다. 교통사고가 나거나 불치병에 걸리거나 한 것도 아니라 영문도 모른채. 마치 하늘에서 신이 그냥 데려가버린 것처럼.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접했던 죽음은 병실에 누워서 스스르 눈이 감기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었는데. 현실에서는 예고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슬픔도 없었다. 그 아이가 쓰러지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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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나도 언제든지 아무 이유없이 죽을 수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부모님들께서도 영원히 사시는 분들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되었다. 아니 별다른 일이 없다면 아마도 부모님들께서는 자식인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실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형도 친구들도 모두 언젠가 반드시 죽게된다는 사실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모두다.


화를 내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별로 화를 낼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짜증과 화를 아예 안내는 것은 아니다.)

물건이나 사람, 관계에 집착하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남들의 시선, 말에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것이 극단적으로 싫어졌다. 인생을 낭비하는게 싫어졌다. 시간낭비라는 말만 들으면 오해할 소지가 있는데, 늦잠을 자거나 게으름을 피운다거나 하는 것은 시간낭비가 아니다. 오히려 아무 이유없이 좋은 대학에 가기위해서 밤낮없이 공부를 한다면 바로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시간낭비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극진한 효자가 된 것은 아니고 여전히 부모님께 종종 짜증을 부리기도 하고 말을 안듣기도 하지만 적어도 좀 더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게 되었다.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했다.

그건 바로 가족이었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기였다. 

그래서 내 인생의 시간을 최대한 가족과 함께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자주 사랑한다고 말하고, 안아주고, 대화를 나누고

매일매일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할 수 있도록

평온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잊지않으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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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변화는 남들은 별로 관심없는 예비군 심폐소생술 교육을 집중해서 열심히 듣고, 지하철에 비치된 심장제세동기 작동법을 눈여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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