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8.14 15:11

[약콩 2호] 콩닥콩닥, 약콩 만남 : 땡글이님 (북카페 책과 콩나무)













 

 땡글이(faust0825)





  1.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서평)이란?


좋은 글은 객관적인 기준뿐만 아니라 주관적인 관점까지 고려해 평가받는 대상이 됩니다.
기자들의 기사는 사실(FACT)을 바탕으로 그 사실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객관적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완성한다고 배웠습니다.
서평 역시 훌륭한 저자들의 ‘책’이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재생산되는 창작물이지만 서평을 쓰는 필자의 주관적인 근거나 주장, 그리고 느낀 점을 포함시킨다는 점에서 기사와는 좀 다릅니다.
시중에서 ‘글쓰기’ 관련 서적들을 구입하거나 ‘서평클리닉’에 참가에 유명강사의 강의를 들으면 “아! 이렇게 글을 쓰는구나!”라고 생각하겠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은 점점 희미해지는 기억을 한탄 할 수밖에 없는 모양입니다.
서평과 같은 ‘글쓰기’는 마라톤과 같이 매순간 내 능력을 조절하며 꾸준히 이어가야 합니다. 작가나 기자가 ‘붓을 놓다’ 또는 ‘펜을 놓다’ 등 절필을 선언하는 것은 바로 어떻게 글쓰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반증입니다.
그럼 좋은 글이란 어떤 글일까요?
대답하기 참 어려운 질문이지만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첫째, 간결해야 됩니다.
첫 주어로 시작해-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두 줄 세줄 심지어는 네 줄 이상 읽다가 마침표를 확인하는 순간 “어! 무얼 말하려는 거지?”라며 혼란을 겪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을 겁니다. 그래서 문장은 간결해야 합니다.
간결하지 않으면 글쓴이만 알게 되는 사문(死文)이 됩니다. 그럼 읽는 사람은 몇 번 훑다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쉽게 지루해져 끝내는 책을 덮어버리거나 마우스를 클릭하는 불상사가 발생합니다.
 
둘째, 미괄식이든 두괄식이든 일관되게 글쓰기를 해야 됩니다.
저도 글을 쓰다보면 잘 지키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머릿속에 대강의 줄거리를 생각하고 글쓰기를 하면 점점 분량은 많아지고 처음 의도는 온데간데없고 결국 글은 삼천포로 빠져버립니다. 기사는 아마도 두괄식-역피라미드 형태-으로 씁니다. 
줄거리든 아니면 서평자의 주장이든 앞부분에 조금, 중간에, 그리고 마지막에 조금씩 쓰다보면 아마 읽는 사람들은 산만하게 느껴 쉽게 피로하고 흥미를 잃습니다.
일관된 글쓰기는 하나의 방법일 뿐 유일한 원칙은 아닙니다. 자신의 의도에 맞게 멋을 부릴 수도 있고 일탈된 방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지 글을 쓰거나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일관된 글쓰기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책장 넘기는 속도가 무척 느려져 읽기 싫어질 때가 많았습니다. 
 
셋째, 요점을 한눈에 알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부분에서 말한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책에서 저자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아니면 서평을 쓰는 사람이 무엇을 알려주고 싶은지 요점을 간략하고 일목요연하게 말해야 됩니다.
요점이 흐트러지면 글은 중구난방 널뛰기를 하게 되고 남의 뒷다리 긁게 됩니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면 자신은 물론 옆에 사람은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요점, 즉 관점은 저자의 의도는 물론 서평자의 주관도 모두 포함됩니다.


넷째, 편향된 글쓰기를 지양합니다.
여기서 ‘편향’(偏向)이란 말은 일방적인 사상의 논거나 주장, 검증되지 않는 내용을 아무런 여과 없이 받아들인다는 말입니다.
서평은 주관적인 관점이 부각되기 마련이지만 서평 역시 창조적 생산물로 여러 사람들에게 읽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토론은 정해진 주제를 놓고 서로 반대 입장을 가진 동수의 패널들을 갖춰놓고 진행합니다.  한 사람이 의견을 내놓으면 반대 입장에 선 사람이 반론을 제기하는 식의 징검다리 대화법이 적용됩니다.
글쓰기도 토론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가능성을 두고 신랄하게 토론할 수 있는 글을 뒷받침할 수 있는 논거와 함께 자신의 주장을 포함시킵니다. 책이나 서평도 다양한 생각과 주장들이 공유하는 하나의 장입니다.
그렇다고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내용을 담는 ‘회색인’이 되라는 말은 아닙니다. 
편향된 글쓰기의 지양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본인의 느낌과 타인의 지적을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드는 매개역할을 하는 방법입니다. 소설, 수필, 시, 인문서 등 모든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섯째,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문장을 피하고 오탈자가 없도록 합니다.
우리는 흔히 ‘탈고’, ‘책거리’, ‘책씻이’라고 말합니다.
서평자는 산고의 고통과 같은 과정을 거치고 온갖 노력을 기울여 글을 써 놓고 문장에 오탈자가 많거나 애매모호한 의미를 가진 문장이 수두룩하다면 “2%가 부족해”라는 말을 들을 겁니다. 또 “성의가 없는 글”이라며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으로 인식됩니다.
글을 쓰고 나면 이중적 의미로 혼란을 줄 수 있는 문장이나 단어, 또는 오자나 탈자는 없는지 인내심을 갖고 꼼꼼하게 확인해야 합니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인쇄물을 확인하게 되면 꼭 오자나 탈자를 확인할 수 있거든요.



  2. 나는 이렇게 글을 쓴다!



좋은 글에 대한 정의를 내렸지만 서평을 쓸 때면 왜 위의 내용들이 잘 지켜지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전문적으로 글을 쓰지 않는데서 오는 풋내기 재주일 수 있겠고 내공이 부족한 탓도 있는 모양입니다.

저는 책에 대한 예의가 없습니다. 자기계발서나 경제·경영·인문서는 물론 소설이나 수필까지도 감동적인 문구나 핵심적인 단어에 밑줄을 긋습니다. 아마도 ‘아포리즘(aphorism)’을 찾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인가 봅니다. 
머리가 나쁜 탓에 책 내용을 모두 기억할 수가 없어 이런 방식을 사용합니다.
또 등장인물, 배경, 사건의 발단 등 대강의 뼈대를 머릿속에 그립니다. 이 과정에 얼마나 스트레스 받고 긴장된 순간인지 모르겠습니다.
수백 수천 쪽에 이르는 책을 정신없이 읽다보면 사건내용은 물론 등장인물의 이름까지 기억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포스트잇에 메모 해 놓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점점 뇌세포가 감소하면서 희미해진 기억을 더디게 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글을 쓸 때 참 편리합니다. 
그리고 몇 쪽 몇째 줄에 나오는 글을 인용했다면 신뢰감을 얻을 수 있겠죠?
책표지나 중요한 문장이 있는 부분을 쪽수가 보이게 촬영한 후 이미지를 확보합니다. 저자의 사진도 있으면 좋겠죠? 요즘은 인터넷에서 거의 대부분의 자료를 구할 수 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겁니다.
실제 자신이 촬영한 이미지는 “나는 이 책을 읽었고 소장하고 있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기록적인 측면과 책에 대한 기억을 좀 더 오래 동안 간직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되도록 실천에 옮깁니다.
책을 읽는데 급급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좀 많은 시간이 필요하더라고 저자의 말이나 작품후기, 그리고 작품해설을 미리 챙깁니다.



  3.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책



특별하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는 이상 어떤 책이든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 저 책 가리지 않고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글에 대한 어느 정도의 혜안이 생긴다고 봅니다.
특히 황석영, 한승원, 박경리, 박완서님의 책들을 읽으면 토속적이고 생소한 단어들이 많이 등장하고 문장 역시 참 맛깔스럽게 느껴집니다.
굳이 소개하자면 <글쓰기의 공중부양(이외수가 처음으로 공개하는 실전적 문장비법)>과 <국어실력이 밥 먹여 준다(낱말편1,2)> 두 권을 조심스럽게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글쓰기의 공중부양>은 저자의 수십 년 작가인생을 걸고 글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문장에 대한 실제적인 이야기들이 들어있습니다.
일명 <국밥>은 우리가 흔히 잘못 사용하는 단어에 대해 자세하게 예를 들어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모두 책읽기는 물론 글쓰기를 할 때 유용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4. 좋아하는 작가 혹은 기억에 남는 책

 


개인적으로 황석영, 한승원, 이외수님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대부분 국내 작가들입니다.
황석영님 같은 경우는 일관된 작품세계가 마음에 듭니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등 시대적 아픔을 여과 없이 드러낸 작품과 <객지>, <무기의 그늘> 등 좌우의 대립과 혼란 속에서 잃어버리지 않을 올곧은 사상의 맥을 잘 짚어줬다고 생각합니다.
소외된 계층과 억압받는 하층민의 삶을 아우르는 작가의 노력이 참 멋지고 감동적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승원님은 역사, 민족, 인간 등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많이 집필했습니다. 역사 속 인물을 중심으로 쓴 <다산>, <원효> 등과 인간내면의 고뇌와 고통, 그리고 치부까지 해부한 내용을 담은 <멍텅구리배>, <포구>, <아리랑별곡> 등도 백미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지막으로 이외수님은 세상을 향해 부조리를 꼬집는 특유의 삐딱한 글쓰기가 기인이라는 꼬리표처럼 독자의 마음을 후련하게 만듭니다.
아마도 젊은 시절 온갖 고생과 고통의 시간으로부터 터득한 삶의 철학이 고스란히 글속에 녹아있는 작가라고 감히 평가하고 싶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5.  하고 싶은 말

 

 

글을 쓴다는 것은 참 매력적인 일입니다. 또 글을 읽는다는 것도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줄 한 줄 써내려가는 글로 인해 사람을 살리고 죽일 수도 있고, 어떤 글을 읽느냐에 따라 맑은 영혼을 갖거나 또는 폐부 깊숙이 썩은 물이 고일 수도 있습니다.
글은 우리들에게 절망의 늪에서 꺼내 희망을 품게 도와주기도 하고 때론 가던 길을 멈추고 주저앉고 싶은 마음을 희석시켜 다시 힘을 내 계속 길을 가게 만듭니다.
책을 읽는 기쁨을 아는 사람이라면 글을 쓰는 희열도 알 수 있을 겁니다.
때론 글을 어떻게 쓰는지 몰라 고민하고 내가 쓴 글이 타인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지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글쓰기의 정도(正道)는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또  어떤 평가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이 모두가 잠자고 있는 나의 재주를 키우는 과정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저는 ‘책에 대한 예의’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책을 얻고 그 책을 읽고 또 읽은 책을 평생 곁에 두기 위해 긁적긁적 글을 쓰는 행위, 책을 책으로서 잘 보관하는 행위-가끔 책을 베고 잠을 잔다든가 가구받침으로 사용하거나 제대로 보관하지 않아 너덜너덜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가 모두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요? 한권에 1만 원 정도 하는 책이 비싸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한권의 책을 만들기 위한 온갖 노력을 생각해보면 부담 느낄 경제적 가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책을 많이 읽는 ‘다독(多讀)’도 중요하지만 천천히 제대로 읽는 ‘정독(精讀)’ 역시 절대로 필요합니다. 그리고 한권의 책을 여러 번 읽을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희미해지는 자신의 기억을 되살리는 방법으로 말입니다.
한 권 한 권 쌓이는 책들을 보면 부자가 된 느낌입니다. 이렇게 유형의 재산 가치로 평가했을 때 부자라고 한다면 책들을 자신의 가슴과 머릿속에 담아 마음의 부자가 되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약콩 2호, 땡글이님



Trackback 0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