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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0 08:04

독서후기클럽 1기 우수서평 - "경청" 박근택




경청  - 박근택





자취생. 그 이름만 들어도 뭔가 찡하게 와닿는 게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하는, 어찌 보면 약간은 고된 생활을 하는 학생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훨훨 날아다니는 새처럼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타의 부러움을 받을 수 있는 학생이기도 하다. 그렇다. 나는 자취생이다. 아무도 깨우는 사람 없이 알람시계에만 의존하며 일어나고, 누군가 밥 먹으라고 하는 소리 하나 들을 수 없이 배가 고프면 그릇을 들고 공동 부엌으로 가서 밥을 해 먹는다. 시간이 되면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수업을 마치면 방에 와서 혹시나 빨래할 것이 있으면 세탁기를 찾아가고, 방이 더러우면 걸레를 빨아서 청소를 한다. 밤이 되면 '잘 주무세요'라는 말한마디 붙일 곳 없이 혼자서 이불을 펴고 좁은 방 안에서 잠을 청한다. 아마도 자취생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자취생만의 고독을 몰라서 하는 말일 것이다. 현재 내가 지내고 있는 건물은 총 4층짜리 건물인데 2, 3층에 걸쳐서 자취방이 있다. 그리 큰 건물도 아닌데 각 층당 무려 방이 16개씩이나 들어가 있고, 공동으로 쓰는 부엌은 달랑 하나 있다. 사람은 남녀 합쳐서 모두 32명 가까이 된다. 다행스럽게도 부엌에는 항상 누군가 밥을 지어놓고 있으며, 중국산이지만 김치도 냉장고에 준비되어 있다. 그러면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매일같이 라면을 끓여서 김치를 가져다가 방에가서 혼자 조용히 식사를 해결한다. 허기가 가시지 않으면 국물에 밥을 조금 말아서 먹는다. 부엌에 있는 밥과 김치를 아주 적절하게 사용하면서 간단히 식사가 해결된다. 여학생들은 대체로 뭔가를 구워 먹는다. 그래도 부모님이 해주시는 밥맛이 날 수가 있으랴! 근처 작은 가게에서 사온 '햄'이나 '계란' 이런 간단한 재료들을 프라이팬에 구워다가 김치랑, 그리고 따로 사 놓은 김 같은 음식들이랑 같이 먹는다. 안 먹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체로 다들 저녁시간에는 부엌에서 한두번씩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좁은 부엌에 3명이나 서 있고 2명은 뭔가를 굽고 1명은 그릇을 씻는데도, 세 사람의 사이가 불과 1미터도 채 되지 않는데도 정적만이 흐른다. 서로가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는 것이다. 불편한 건지, 부담스러운 건지. 외국 사람들은 길거리에 가다가도 아무나 보고 '굿모닝' 인사하면 상대방도 웃으면서 '굿모닝' 인사를 받아준다던데, 간단히 '하이' 라고 인사해도 눈웃음이라도 지으면서 받아줄 여유가 있는 곳이라 들었는데, 한국은... 그게 아닌가보다. 안녕하세요? 라고... 길거리에서 인사를 해 본 적이 있다.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해 했는데. 역시나 무시를 해버렸다. 이 사람 뭐야? 라는 심정이었을까. 아니면 속으로는 인사를 받아주고 싶었지만 처음 보는 사람이라 내키지 않아서 그랬을까. 나는 어디를 가도 인사를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식당을 가든 술집을 가든 버스를 타든 가게를 가든. 다행히 이런 곳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서비스업이라 그런지 먼저 인사를 해주지는 못할망정 아주 반갑게 큰 소리로 인사를 받아준다. 그것이 진심으로 하고 싶어서 하는 인사이든 말든 무슨 상관이랴! 내 인사를 남이 받아주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말의 힘에 대해서 수도 없이 들어 보았다. 말. 때로는 가슴속에서 입밖으로 나오기까지 10년이 걸릴 수도 있지만, 때로는 거침없이 나오는 바람에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칼을 꽂을 수도 있는. 아주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말의 힘. 하지만 그 말로 인해 세상사 모든 일이 해결될 수도 있다. 말. 그리고 작게나마 말의 힘을 느껴 보았다. 얼마 전 수업시간이었다. 아는 사람 단 한명도 없는 교양 수업이었고, 모두들 처음 보는 사람이라 상당히 어색했다. 교수님께서 서로 자신을 소개하고(영어로) 상대방에 대해서 알아보아라고 짝을 지어주며 시간을 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계속 이렇게 어색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처음 보는 앞사람과 대화를 하게 되었고 조금씩이나마 알게 되었다. 심지어는 주어진 시간이 끝났는데도 교수님이 수업하시는 도중 도중에 이것저것 웃으면서 물어보기도 하였다. 너무 흥미로웠다. 말을 걸기 전까지는 그렇게 다가가지 힘들었는데. 차마 제대로 눈을 쳐다보기도 불편했는데... 방에 와서 한참을 생각했다. 말이란 것. 사람을 이어주는 데 말처럼 좋은 건 없지 않을까... 한번 시도를 해 보았다. 역시나 부엌에서 사람을 만났다. 웬 아가씨였는데, 뭔가를 신나게 굽고 있었다. "저기 혹시, 두분이서 같이 지내세요?" 가끔 이런 사람들이 있다. 조금 넓은 방에 두 명이서 같이 사는 사람들. 매일 밥을 두 공기를 가져가길래 물어보았다. "네? 아, 네..." "어때요? 두 분이서 살기에 방이 조금 좁지는 않으세요? 가격은? 매일 일찍 일어나시나봐요..." 등등. 서로의 공통되는 관심사가 없으니 질문할 거리가 도저히 생각나질 않았다. 다행히 내 그릇을 모두 다 씻어서 이젠 갈 시간이다. "맛있게 드세요" "아, 네" 라는 짧은 인사와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잊을 수 없다. 그 딱딱하던 아가씨의 표정이 어쩔 줄 몰라하며 웃던 모습을. 활짝 웃은 건 아니지만. 조금 황당했었던지, 웃음이 나오는데 억지로 참고 있는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약간은 어색하기도 했지만.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완전 입고리가 땅바닥을 향하면서 로보트처럼 딱딱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보단 훨씬 부드럽지 않은가. 또다른 시도를 해 보았다. 이번은 남자분이었다. "저- 어디서 오셨어요?" 아! 경남 창원이란다. 이것으로 되었다... 부산 출신인 나는, 사투리를 섞어가며 신나게 말을 했다. 여기 학생이고 무엇을 공부하고 전에 있던 방은 어떻고 등등. 그 사람도 자신에 대해서 이리저리 알려주었다. 아주 가깝게 다가가진 못했지만 그래도 현관에서 볼 때면 항상 웃으면서 인사를 건넨다. 또다른 남자도 있었다. 요즘 가장 웃으면서 대화를 많이 하는 사람이다. 소위 '총무'라고 부르는 사람인데, 매일같이 공동시설을 청소하며 밥을 지어놓고 손님들이 오면 방을 보여주고 계약을 맺는 역할을 대신하는 사람이다. 부엌에서 만났는데, 식기구들을 정리하고 밥이 얼만큼 남아 있나 확인하는 모습에 "저기, 혹시 총무님이세요?" 라는 질문을 서슴없이 던졌다. 그리고는 10분간 대화가 시작되었다. 밥을 어떻게 이렇게 잘하느니 몇살이느니 방이 어떻고 에어컨은 언제 틀어주며 어느 지역에서 왔고 이리저리, 결국은 군대 얘기까지 갔다. 다행히 일찍 끝났지만. 그 이후에는 볼 때마다 인사를 반갑게 하고, 심지어는 밥도 같이 먹었다. 매일같이 식당에 가서 밥을 사 먹으면 훨씬 편할 테지만, 한푼이라도 아끼려다 보니 근처에서 작은 반찬거리를 조금씩 사서 구워 먹는다. 그 덕분에 사람들을 조금씩 만나게 되었고, 이렇게 반갑게 인사를 할 수 있는, 어찌 보면 새로운 친구도 사귀게 되었다. 하지만 마지막 사람은... 나를 쥐구멍으로 도망가고 싶게 만들었다. 어떤 아가씨가 계란을 굽고 있었다. 옆에는 토스트 빵들이 있었고, 잼도 보였다. 아무래도 저 계란을 빵에 넣어 먹을 모양이었다. 나는 물컵을 들고 부엌을 들어가면서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건넸다. 분명 인사를 받아 주겠지! 그러면 또 어디서 왔느냐는 말부터 시작해서 또 한 명의 친구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하지만... 귀가 멀지 않았다면 분명히 내 말을 들었을 텐데, 뒤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건... 황당했다. 부엌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전화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얼른 뜨거운 물을 받아서 녹차 티백을 넣고 도망치듯 나와버렸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세상에나. 이렇게 부끄러울 수가 있을까! 나름대로 힘들게 인사를 꺼냈는데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무시를 당해버리다니...

'경청'.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이벤트에 당첨되어 기쁜 마음으로 책을 접하게 되었다. 유명한 그룹의 회장이 아들에게 추천해준 책이라고 적혀 있었다. 평소에도 화술에 관한 책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서슴없이 첫장을 펼쳤다. 악기를 제작하는 한 회사의 홍보과장으로 있는 주인공이 있다. 이름은 '이청'. 그에게는 발달장애를 겪고 있는 어린 아들이 있었다. 매일같이 회사 사람들은 그를 '이토벤'이라고 부른다. 자신이 베토벤 음악을 좋아해서, 베토벤처럼 곱슬머리라서, 이런 좋은 뜻으로 여기고 있었지만 사원들은 귀머거리 베토벤처럼 남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아서 지어준 별명이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의견이 맞다고 싶으면 그 누구의 반론도 듣지 않고 시행하는 막무가내 성격이었다. 그러던 중 회사에 위기가 오고 구조조정이라는 시련이 오면서 이토벤도 그 시련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악기 대리점 개설권을 준다는 회사의 제안을 받고 구조조정에 협조를 한다. 대리점 오픈을 앞둔 어느 날, 갑자기 이토벤은 쓰러지게 되고... 병원에서는 수술마저 늦어버린 악성 종양이 뇌에서 발견되었다고 선고를 했다. 이제는 점점 베토벤처럼 청력이 감퇴할 것이고, 심지어는 살 날도 그리 많지 않았다는 청천벽력 같은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지만, 마지막으로 사랑하지만, 그동안 말을 많이 나누지도 못한 어린 아들에게 무언가를 남겨주고 싶다는 결심을 하고 결국 바이올린 제작에 들어갔다. 발달장애인 아들이 바이올린을 연주할 줄 알았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강원도에 있는 한 악기공장 한구석에 들어가서 3팀 무급사원으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다. 1, 2팀과 달리 3팀은 회사 내에서 가장 개성이 뚜렷하고 고집이 세며 또한 실력면에서도 많이 떨어지는 장인들을 모아 놓은 팀으로 팀 내에서도 많은 마찰이 있었다. 이토벤은 이런 팀원들에게 비아냥거림과 멸시를 받으면서 생활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생각했을 때 그에게는 무엇보다 아들을 위한 바이올린 제작이 급했기에, 이것 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조금조금씩 배워서 만들때마다 공명통이라는 별명을 가진 실력 좋은 현악기 제작 선배에게 퇴짜를 맞으며 다시 만들라고 한다. 그렇게 열심히 만들었건만 벌써 수 번째 자신이 만든 바이올린의 한 부분이 박살나고 없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생각했을 때 이토벤의 마음은 점점 더 조급해지고 있었다. 동시에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남이 하는 말을 놓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귀가 잘 들리지 않기에 팀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말에 더 집중하고, 듣는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답하는 이토벤의 행동에 서로 입만 열면 으르렁거리는 팀원들의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한다. 평소에는 말도 잘 하지 않던 사원들이 이토벤에게는 자신의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얘기까지 하게 되며, 얘기를 마친 후에는 마음이 편해진 것을 오묘하게 느끼곤 했다. 얼마 후 이토벤은 최고의 바이올린 목재를 구한답시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가 조난을 당했지만 다행히 한 노인의 구조로 산속에서 같이 머물 수 있게 되었다. 이 시간동안 노인은 자연의 소리를 듣고 만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열라는 소중한 가르침을 준다. 귀가 점점 멀어지는 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이토벤의 질문에, 진짜 청력은 귀가 아니라 마음에 있다고 한다. 그저 뻥 뚫린 귀가 아닌, 마음을 비우고 진심으로 들을 준비가 되면 상대방도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이었다. 당장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지만 이토벤은 노인이 알려준대로 자신이 나무, 숲, 산이 되어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려고 노력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도무지 들리지 않던 찰나, 나무가 무언가 대답을 한 것처럼 느꼈다. 아니면 이토벤 자신이 임의적으로 만들어버린 대답일 수도 있지만. 하지만 이렇게 천천히 자연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이토벤은 많은 깨달음을 얻고 산에서 내려와 바이올린 제작을 다시 시작한다. 더불어 강팀장의 마음을 움직여 그 속에 있던, 오래 전부터 자신이 몰래 개발해오던 '카브드 공법'을 공개하게 되고 팀원 모두가 그 매력에 빠지게 된다. 이 엄청난 기술이 결국 사장에게까지 보고가 되어 회사 전체의 계획이 바뀌게 된다. 얼마 안 있어 미국 시애틀에서 컨벤션이 개최되고 강팀장은 자신이 발명한 기계로 만든 첫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출장을 나섰다. 훌륭한 기술이지만 메이커가 미덥지 않은 탓에 많은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호프만이라는 현악기 도매의 큰손이라 불리는 대표가 관심을 보였다. 끝내 계약을 하게 되었고 팀원들은 기쁨에 벅차 바쁘게 일을 하기 시작했다. 빠듯하게나마 시간 안에 주문량을 만들어 호프만 대표에게 보냈지만 그동안 이토벤의 건강은 많이 나빠졌다. 강팀장도 그동안은 이토벤에게 바이올린 제조법을 가르칠 수가 없었기에 이토벤은 더욱 초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어왔다. 바로 호프만 대표의 전량 반품 요청! 다른 모든 부분이 좋았지만 아주 작은 한 곳에 있는 치명적인 결함으로 인해 모두 반품을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즉시 만남을 가지고 결함을 확인 후, 팀원들 모두를 데려와 짧은 시간 내에 수리를 하겠다고 했지만 호프만 대표의 대답은 변함이 없었다. 다만 결정적인 순간에 사장의 한 마디가 호프만의 마음을 바꿨다. "저희 제품을 구매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다만 제가 부탁 드리는 것은 저희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길고 긴 설득 끝에 호프만이 요청을 받아들였고 구매까지 하게 되었다. 사장은 마음으로 호프만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것이다. 회사 일은 다행히 잘 풀렸지만, 이토벤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었다. 심지어는 며칠이 고비라는 의사의 말까지 듣게 되고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었다. 신경 또한 무척 날카로워졌다. 아들을 위해 바이올린을 만들 수 없는 상황이 그에게는 더이상 살아있는 삶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팀원들의 노력으로 바이올린이 얼추 완성이 되었고, 병원까지 가져가서 이토벤에게 얼른 마무리를 지으라고 말한다. 이토벤은 아들에게 한시라도 빨리 바이올린을 건네주기 위해서인지, 병상에서도 혼신 힘을 다해 끝내 바이올린을 완성하게 되었다.

창립 20주년 연주회에 결국 아들의 연주가 시작되려 한다. 하지만 갑자기 머리가 하얘지며 몸에 기력을 잃고 이토벤은 그 자리에서 쓰러지게 된다. 아들의 연주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급히 병원으로 가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아내의 핸드폰을 통하여 아들의 연주회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듣게 된다. 10년 후에 아들은 발달장애라는 약간의 불편함을 물리치고 훌륭한 바이올린 연주가가 된다.


차갑디 차갑던. 너무 차가워서 사랑하는 아내와도 마음 터놓고 이야기를 할 수 없었던 고집스런 한 회사원의 이야기이다. 언제나 자신의 방식이 옳다 싶으면 그 누구의 의견도 묵살시켜버리고 자신의 뜻대로 밀고 나갔기에. 자신은 그것이 당연하다고 믿었기에.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모두가 그의 이런 행동에 반감을 얻게 되었고, 심지어는 비아냥거리기까지 한다. 단지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기만 해도 이러진 않았을 텐데. 상대방이 입만 열려고 하면 발언권을 뺏어버리고, 다른 의견이 나오기만 하면 자신의 의견이 그래도 더 낫다면서 밀고나가버리는. 결코 소설 속의 상황만은 아닐 것이다. 역사 속에서도 이런 일로 인해 심하게는 나라의 미래까지 바뀌게 되는 일도 있었고 현실 세계에서도. 굳이 회사가 아니더라도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친구와 친구 사이에서, 선배와 후배 사이에서, 선임과 후임 사이에서, 병사와 간부 사이에서, 사장과 직원 사이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쪽이 조금만 양보하고 들어주면 될 터인데. 혹시나 상대방이 고민을 털어놓는다고 해서,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그 고민을 해결해 줄 필요는 절대 없다. 물론 해결을 할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상대방은 그 고민을 털어놓고, 누군가 나의 고민을 들어주는구나, 나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내 곁에 있구나 라는 느낌만 가지게 되어도 상당히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 그저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이 사람이 어떤 일 때문에 괴로워할까. 내가 저 상황이면 어떨까. 얼마나 힘들었으면 나에게 이런 일을 말했던 것일까. 그리고 이 말을 하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냥 들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일상 생활에서 하는 가벼운 얘기를 제외하고,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들어가거나 진실된 이야기 같은 경우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입밖으로 꺼내야만 들을 수 있다. 결코 가볍게 시작되는 이야기는 없다. 감추려면 무덤에 갈 때까지. 숨기려면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그렇게까지라도 숨길 수 있는 게 바로 사람 마음이다. 마음과 입까지의 거리는 아무리 멀어도(심지어 마음이 발가락 끝에 있다 하더라도) 2미터를 넘지는 않을 것이다. 좋다. 거인들을 위해서 2.5 미터라고 하자. 일반 성인의 한 걸음이 약 77센치라고 할 때, 불과 3걸음이면 닿을 거리이다. 아무리 멀어도..

하지만 입밖으로 내기는 그토록 힘든 이야기도 많다. 과연 이런 이야기를. 바깥 귀만 살짝 열어놓고 고개만 끄덕끄덕 거리면서 들어줄 수 있을 것인가? 깊고 깊은, 속을 알 수 없는 곳에서 나온 이야기를 제대로 들으려면, 머릿속의 온갖 사념들을 모두 지워버리고 진실되게 마음 속 깊이 새겨들어야 그 사람의 진심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듣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속이지 않으며, 계산하지도 말고, 그야말로 진심으로 사람을 대한다면, 듣기라는 것이 그토록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가족간의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그게 그토록 어려울까.
친구에게 고맙다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그게 그토록 어려울까.
다만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른다는 못난 핑계로 미루고 미룰 뿐.
귀보다 마음을 더 크게 열고 사람을 대한다면, 이런 따뜻한 한마디가 미루어지는 일은 없지 않을까.



"수다" 더 많은 이야기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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