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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6 10:33

<어느 소방관의 기도>를 읽고

<어느 소방관의 기도>를 읽고



  어릴 적 내 꿈은 소방관이었다. 어린 아이의 막연한 상상 속의 꿈이 아니라 고등학생 즈음 진지하게 진로를 고민하던 때의 꿈이었다. 하지만 그때도 주변에 소방관이었던 사람은 없었고,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사람들을 구하고, 불과 싸우는 소방관은 마치 영화 속 슈퍼 히어로의 현실판 같았다. 영어로는 파이어 파이터 (Firefighter) ‘불과 싸우는 사람’ 얼마나 멋진가? 순수했던 고등학생의 가슴을 불 지르기에 충분했다. 어떻게 소방관이 될 수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운동을 열심히 하다보면 도움이 되겠지 생각만 했었다.

  하지만 대학교 입시에는 점수에 맞춰 전혀 다른 전공으로 학교에 들어갔고, 조금씩 소방관의 꿈을 잊어갔다. <어느 소방관의 기도>를 읽으며 소방관의 꿈을 꾸던 그 시절이 다시금 떠올랐다. 만약 그 때 이 책을 읽었다면 좀 더 현실적으로 소방관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어느 소방관의 기도>는 현직 소방관이 자신이 직접 겪은 현장의 일들을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쓴 느낌의 책이다. 첫 장부터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기록들이 담겨있다. 수많은 생명들이 숨을 거둔 기록들, 슈퍼 히어로만 같았던 소방관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무수히 많은 실패와 죽음들을 견뎌내야 하는 연약한 한 인간의 이야기다.

  이 책 속에는 심정지 응급환자를 구조하기 위해 심폐소생술을 하고, 구하지 못한 생명 때문에 눈물 흘리고, 처음으로 심폐소생술로 구한 생명에 감사하는 소방관이 있다. 소방관의 꿈을 꾸던 고등학생 때,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다가 내 눈 앞에서 친구가 무너져내리듯 쓰러진 것을 본 적이 있다. 나중에 듣기로 그 친구는 심장마비로 쓰러졌었고, 지병도 없었고, 특별한 이유도 없이 갑자기 그렇게 하늘나라로 갔다고 한다. 이 세상에는 인간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죽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소방관들은 영문도 모른채 죽어가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거대한 운명의 파도에 맞서 싸운다. 아마 내가 소방관의 꿈을 꾸기 시작한 건 그 날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무엇인가 할 수 있었다면 죽음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사실 늦은 나이지만 뒤늦게 소방공무원 시험을 등록하고, 준비하기도 했지만 결국 꿈을 이루진 못했다.

  <어느 소방관의 기도> 에서는 현장에서 안타깝게 순직한 소방관에 대한 이야기들도 적혀있다. 불길에 휩싸인 건물 안에 혹시나 있을지 모를 한 사람을 구조하기 위해 여러 명의 소방관이 진입했다가 건물이 무너져내린 홍제동 화재 사건과 세월호 수색 현장에 투입되었다가 헬기추락사고로 순직한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 지금도 수많은 소방관들이 부족한 인력과 낡은 장비들로 인해 힘들게 구조활동을 하고 있다는 현실을 전한다. 그리고 응급구조요청이 아닌 잠긴 문을 열어달라는 신고와 심지어 바퀴벌레를 잡아달라는 전화에도 출동해야 하는 실정도 있다. 그런 일들이 너무나 오랜 기간 반복되어 왔기에 바뀔 것을 기대하지 않아 쓴웃음을 짓는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안전 인식이 개선되어 전 차량에 안전벨트를 착용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는 글이 적혀있다. 

  다행히도 2015년에 쓰여진 이 책의 바람이 3년이 지난 지금 이뤄졌다. 앞으로 모든 차량은 뒷좌석에도 안전벨트를 착용해야 한다. 그리고 119 신고에 민원관련 신고는 따로 해야 한다는 정책이 입법된다고도 한다.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 또한 내년 1월부터 점차 시행한다고 하니 저자도 이제는 쓴웃음이 아니라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며칠 전, 외할머니께서 소천하셔서 장례식장에 다녀왔었다. 외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보며 슬퍼할 새도 없이 밀려오는 손님들을 맞이하고, 외할머니가 묻힐 고향 작은 섬에 가서야 눈물을 마음껏 흘렸다. 외할머니가 내게 했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들렸다. “내 새끼왔냐? 우리 강아지 왔냐? 이제 길에서 봐도 몰라보겠다. 내가 건강해서 제주도에 가면 좋았을건데” 결국 외할머니는 제주도에 오시지 못하고 하늘나라에 가셨다. 90년을 사시고, 병실 침대에 누워 잠들 듯이 편안히 세상을 떠나셨지만 남은 가족들에게는 큰 슬픔이었다. 

  모든 죽음이 이렇게 슬픈데, 소방관이 매일 마주하는 사고와 죽음들의 충격과 고통, 그 슬픔들의 깊이는 얼마나 클 것인가? 우리는 종종 죽음의 슬픔은 기억하면서 삶의 소중함을 잊곤 한다.


  “다만 숨 쉬며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 너무도 당연해서 흔히들 잊고 지내는 ‘살아 있음’에 대한 소중함을 잠깐이나마 생각할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


저자 오영환 소방관이 쓴 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다. 저자의 바램처럼 많은 사람들이 살아 있음에 소중함을 기억하면 좋겠다. 그리고 내 어린 시절 꿈이자 많은 사람들의 영웅인 소방관이 좀 더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지원이 이뤄지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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